2016년 2월 3일 수요일

목표 달성 능력을 유지하는 7가지 방법


목표 달성 능력을 유지하는 7가지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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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을 응용하여 일을 하는 지식 근로자 개개인은 어떻게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가? 어떻게 수세대에 걸친 변화의 시대에 낙오하지 않고 자신의 일과 인생 모두에서 효과적인 사람이 될 수 있는가? 경영학의 아버지 피터 드러커 교수가 말하는 사례에서 개인이 목표 달성 능력을 유지하는 방법을 배워보고자 합니다. 이 글은 책 '프로페셔널의 조건(청림출판)'에서 일부 내용을 인용하여 작성되었습니다. 

피터 드러커는 그를 효과적인 사람, 계속 성장할 수 있는 사람 그리고 변화할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준, 간단히 말해 과거의 노예가 되는 일 없이 나이를 먹는 법을 가르쳐준 그의 인생의 일곱가지 경험을 통해 우리에게 7가지 방법을 제시합니다. 

첫 번째 경험 : 목표와 비전을 가져라 

나는 일주일에 한 번씩 오페라를 관람했다. 그 당시 함부르크 오페라는, 지금도 그렇지만, 세계 최고 오페라 가운데 하나였다. 나는 견습생이었기 때문에 돈이 별로 없었지만, 다행히 대학생은 오페라를 무료로 관람할 수 있었다. 개막 한 시간 전까지 극장 앞에 가서 팔리지 않은 제일 값싼 좌석은 대학생에게 무료로 제공되었던 것이다. 그런 식으로 오페라를 관람하던 어느 날, 나는 19세기 이탈리아의 위대한 작곡가 주세페 베르디(Giuseppe Verdi)의 오페라를 보게 되었다. 그것은 베르디가 1893년에 작곡한 최후의 오페라 폴스타프(Falstaff)였다. 

오페라를 관람한 후 집에 돌아와 자료를 찾아본 나는 깜짝 놀랐다. 그토록 유쾌하면서 인생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 찬,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활기가 넘치는 오페라를 작곡한 사람이 여든 살의 노인이라니! 그 때 겨우 열여덟 살이었던 나에게 여든 살이라는 나이는 도저히 상상이 되지 않았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는 그렇게 나이 많은 사람이 없었다. 당시에는 건강한 사람의 평균 수명도 50세 정도에 불과했기 때문에, 80세란 나이는 흔한 나이가 아니었다. 

나는 베르디가 직접 쓴 글도 읽었다. 누군가로부터 "19세기 최고의 오페라 작곡가로 인정받고 있으며 이미 유명인이 된 사람이, 엄청나게 벅찬 주제를 가지고 더구나 그 나이에, 왜 굳이 힘든 오페라 작곡을 계속하는가?"라는 질문을 받고 답변으로 쓴 글이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썼다. "음악가로서 나는 일생 동안 완벽을 추구해왔다. 완벽하게 작곡하려고 애썼지만, 하나의 작품이 완성 될 때마다 늘 아쉬움이 남았다. 때문에 나에게는 분명 한 번 더 도전해 볼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베르디의 이 말을 잊은 적이 없다. 그의 말은 나에게 지울 수 없는 강한 인상을 남겼다. 베르디는 그때 내 나이었던 열여덟살에 이미 노련한 음악가였다. 그러나 나는 그때 겨우 면제품 수출 사업으로는 성공할 것 같지 않음을 확인한 것 외에는, 장차 무엇이 될 수 있을지 전혀 생각해보지 않고 있었다. 열여덟 살의 나는 그 나이 또래의 다른 젊은이들과 마찬가지로 성숙하지 못한 풋내기였고, 그리고 나약했다. 그로부터 15년이 더 지나 30대 초반이 되어서야 나는 내게 어떤 소질이 있는지 그리고 어디에 속해야 하는지를 진실로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때에 나는 내가 앞으로 무엇을 하든지 간에 베르디의 교훈을 인생의 길잡이로 삼겠다고 결심했다. 나이를 더 먹게 되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정진하리라고 굳게 마음먹었다. 살아가는 동안 완벽은 언제나 나를 피해 갈 테지만, 그렇지만 나는 또한 언제나 완벽을 추구하리라고 다짐했다. 




두 번째 경험: 신들이 보고 있다

함부르크에서 견습생으로 일을 배우고 있을 그 무렵, 나는 '완벽'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또 하나의 이야기를 읽게 되었다. 그것은 고대 그리스의 위대한 조각가 페이디아스(Phidias)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는 기원전 440년경 여러 조각 작품의 제작을 의뢰받았는데, 그때 조각한 작품들이 2,40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아테네 파르테논 신전의 지붕 위에 여전히 서 있다. 페이디아스의 작품들은 오늘날까지도 서구 미술 역사상 최고의 걸작으로 손꼽히고 있다. 보는 사람마다 모두들 그의 작품을 칭송했지만, 정작 아테네의 재무관은 페이디아스의 작품료 지불을 거절했다. 재무관의 거절 사유는 이런 것이었다. "조각들은 신전의 지붕 위에 세워져 있고, 신전은 아테네에서 가장 높은 언덕 위에 위치해 있다. 따라서 사람들은 조각의 전면밖에 볼 수 없다. 그런데도 당신은 우리에게 조각 전체 값을, 다시 말해 아무도 볼 수 없는 조각의 뒷면 작업에 들어간 비용까지 청구했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에 대해 페이디아스는 "아무도 볼 수 없다고? 당신은 틀렸어. 하늘의 신들이 볼 수 있지."라고 대꾸했다. 폴스타프를 관람하고 난 후 얼마 지나지 않은 때에 이 이야기를 읽었는데, 이는 나에게 또다른 충격을 주었다. 나는 항상 그렇게 살지 못했다. 나 역시 제발 신들이 눈치채지 않기를 바라는 그런 식으로 일을 한적이 많았다. 그렇지만 페이디아스는 내게 어떤 일을 할 때 오직 '신들'만이 그것을 보게 될지라도 완벽을 추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가르쳐주었다.

사람들로부터 "당신이 쓴 책 가운데 어느 책을 최고로 꼽습니까?"라는 질문을 받을 때면, 나는 웃으며 "바로 다음에 나올 책이지요."라고 대답한다. 웃으며 대답하긴 하지만 결코 농담은 아니다. 나는 베르디가 여든 살이라는 나이에도 늘 자신을 피해 달아는 완벽을 추구하면서 오페라를 작곡했던 그때 그 심정으로 대답한 것이다. 비록 지금 내 나이가 폴스타프를 작곡할 당시의 베르디보다 많긴 하지만, 나는 여전히 앞으로 몇 권의 책을 더 쓸 계획을 갖고 있다. 그리고 바라건대, 앞으로 나올 책들은 과거에 나왔던 책들보다 더 나을 것이고, 더 중요한 책으로 읽힐 것이고, 그리고 조금이나마 더 완벽하게 될 것이다. 

세 번째 경험 : 끊임 없이 새로운 주제를 공부하라

우리는 오전 여섯시부터 일하기 시작해서 오후 두시 반, 그러니까 최종 편집판이 인쇄에 들어가면 퇴근했다. 나는 남은 오후 시간과 밤 시간을 이용해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국제 관계와 국제 법, 사회 제도와 법률 제도의 역사, 일반 역사, 재무 등에 관해 공부했다. 공부를 하면서 차츰 나만의 공부법도 개발하게 되었는데, 나는 지금까지도 그 방법을 이용하고 있다. 나는 3년 또는 4년마다 다른 주제를 선택한다. 그 주제는 통계학, 중세 역사, 일본 미술, 경제학 등 매우 다양하다. 3년 정도 공부한다고 해서 그 분야를 완전히 터득할 수는 없겠지만, 그 분야가 어떤 것인지를 이해하는 정도는 충분히 가능하다. 그런식으로 나는 60여 년 이상 동안 3년 내지 4년마다 주제를 바꾸어 공부를 계속해 오고 있다.
이 방법은 나에게 상당한 지식을 쌓을 수 있도록 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나로 하여금 새로운 주제와 새로운 시각 그리고 새로운 방법에 대해 개방적인 자세를 취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공부한 모든 주제들 각각은 서로 상이한 가정을 하고 있었고, 또한 서로 다른 방법론을 사용하고 있었다. 

네 번째 경험 : 자신의 일을 정기적으로 검토하라 

일 년에 두 번씩, 정월 초하루 바로 다음날과 6월에 시작되는 휴가철 바로 직전에 우리는 토요일 오후와 일요일 하루 종일을 지난 6개월간 우리가 했던 일에 대해 토론하면서 보냈다. 편집장은 언제나 우리가 잘한 일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그 다음에는 우리가 잘하려고 노력한 일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갔다. 또 그 다음에는 우리가 잘하려고 충분히 노력하지 않은 분야를 검토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가 잘못했거나 또는 실패한 일들에 대해 날카롭게 비판했다. 그 모임의 마지막 두 시간 동안에는 앞으로 6개월간 해야 할 일을 계획했다. 예를 들면, 우리가 집중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우리가 개선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우리들 각자가 배워야 할 것은 무엇인가 등을 논의했다. 그리고 일주일 뒤 우리 각자는 다음 6개월간의 새로운 업무 계획과 학습 계획을 편집국장에게 제출해야만 했다. 나에게는 일 년에 두 번 있는 그 회합이 무척 즐거웠지만 신문사를 떠난 뒤에는 곧 잊어버리고 지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나서 이미 미국으로 건너와 있었을 때, 나는 지나간 그때의 일을 다시 떠올리게 되었다. 1940년대 초였는데, 당시 나는 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면서, 또 몇 권의 주요한 책들도 출간하기 시작했다. 그때 문득 프랑크푸르트의 편집국장에게서 배운 방법이 기억났다. 그 이후로 나는 줄곧 여름만 되면 2주일간 시간을 따로 할애해서 지난 1년 동안 내가 한 일을 검토하고 있는데, 처음에는 내가 비록 잘했지만 더 잘할 수 있었거나 또는 더 잘했어야만 하는 일을 검토했고, 그 다음에는 내가 잘 못한 일, 마지막으로 내가 했어야만 했는데도 하지 않은 일을 차례로 검토한다. 이를 바탕으로 나는 컨설팅 업무, 저술활동 그리고 강의에 있어서 우선 순위를 결정하여 계획을 수립한다. 




다섯번째 경험 : 새로운 일이 요구하는 것을 배워라 

1993년에 나는 런던에서 규모가 상당히 큰 보험 회사에서 증권분석사로 일했고, 1년 후에는 규모는 작지만 빠르게 성장하고 있던 개인 은행의 경제 분석가 겸 3명의 시니어 파트너의 수석 비서로 근무하게 되었다. 한 명은 그 은행의 창업자로서 70대의 노인이었고, 나머지 두 사람은 30대 중반이었다. 처음에는 젊은 두 사람 밑에서 일을 했는데, 3개월 가량 지났을 무렵 창업자가 나를 자신의 사무실로 불렀다. 그리고 나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자네가 이 회사에 입사할 때 난 자네를 눈여겨보지 않았네. 그 점은 지금도 마찬가지네. 그런데 자네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어리석군. 그뿐만 아니라 자네는 보통 이상으로 어리석군." 나는 젊은 두 동업자로부터 날마다 어리둥절할 정도로 칭찬을 받았던 터라 그 창업자의 갑작스런 비난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을 만큼 당혹스러워했다. 그는 이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자네가 보험 회사의 증권분석사로서는 일을 썩 잘했다는 것을 알고 있네. 그러나 만약 자네가 증권 분석 업무를 계속하길 바랐다면 우리는 자네를 이리로 데려오지 않고 원래 있던 그 자리에 그냥 두었겠지. 그런데 지금 자네는 시니어 파트너들의 수석 비서인데도 여전히 증권분석사 시절에 하던 것처럼 일하고 있더군. '지금' 자네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게. 다시 말해, 자네의 '새로운' 직무에서 효과적인 사람이 되려면 무엇을 해야만 하는지를 생각해보게." 나는 화가 머리끝까지 났지만 내심 그 노인의 말이 옳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나의 행동 방식과 내가 하는 일을 완전히 바꾸었다. 그 후 나는 새로운 일을 할 때마다 스스로 다음과 같이 질문한다. "새로운 일을 맡은 지금 내가 효과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할 필요가 있는가?" 물론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매번 달랐다. 

나는 지난 수년간 진정으로 효과적인 사람들인 나의 고객에게 습관처럼 "당신이 목표를 달성하는 비결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하고 있다. 그들은 보통 내가 그런 것처럼, 오래 전에 세상을 떠난 그들의 상사에게 그 공을 돌린다. 즉 나에게 질문을 던짐으로써 나로 하여금 새로운 직무가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곰곰이 생각할 수 있도록 해준 그 은행의 창업주와 같은 사람들에게 성공의 원인을 돌리고 있다. 적어도 내 경험으로 볼 때는 그 누구도 이러한 것들을 스스로 터득하지 못한다. 당신은 당신을 가르쳐줄 사람을 필요로 한다. 우리는 한 번 그것을 배우고 나면 다시는 잊지 않게 되고 그리고 그 다음에는 새로운 직무에서 성공하게 된다. 새로운 직위에서 성공하기 위해 반드시 뛰어난 지식이나 재능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새로운 직위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그 직위에서 요구하는 일에 대한 집중이 필요하다. 그리고 새로운 도전과 직무 그리고 과업을 수행하는 데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일에 대한 집중을 필요로 한다. 


여섯번째 경험 : 피드백 활동을 하라 

어떤 중요한 의사결정을 할 때마다 자신이 예상하는 결과를 기록해 두었다. 그리고 9개월 후에는 실제 결과와 자신이 예상했던 결과를 비교해보는 피드백 활동을 한다. 그것은 그들이 잘한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들의 장점은 무엇인지를 신속하게 알려준다. 그것은 또한 그가 무엇을 배워야만 하는지 그리고 어떤 습관을 바꿔야 하는지도 알려준다. 마지막으로 그것은 그가 소질이 전혀 없는 분야가 무엇인지 그리고 잘할 수 없는 일이 무엇인지도 가르쳐준다. 

나는 이 방법을 50여 년 동안 꾸준히 실행해 오고 있다. 피드백 활동은 우리의 장점이 무엇인지 밝혀주는데, 이 장점은 한 개인이 자기 자신에 대해 알 수 있는 것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다. 장점은 한 개인이 개선해야 될 것이 무엇인지를 그리고 어떻게 개선해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또한 그것은 한 개인이 할 수 없는 것, 심지어는 시도조차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명백히 밝혀준다. 자신의 장점을 안다는 것, 그 자신을 어떻게 개선해야 할지를 안다는 것 그리고 자신이 할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 안다는 것. 이것들이 바로 지속적 학습의 관건이다. 

일곱번째 경험 :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기 바라는가 

1902년에 나의 부친은 오스트리아 재무성에서 젊은 공무원으로 근무했고, 대학에서 틈틈히 경제학을 가르치기도 했다. 부친은 당시 매우 뛰어난 학생이었던 열아홉 살의 조지프 슘페터를 알게 되었다. 부친과 슘페터만큼 서로 다른 사람도 상상하기가 쉽지 않다. 슘페터는 활기차고 당당하고 외향적이고 그리고 우쭐대기 좋아했다. 반면에 나의 부친은 조용하고, 예의바르고, 절대로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겸손했다. 그런데도 두 사람은 친구가 되어 오래도록 가깝게 지내고 있었다. 
부친은 이야기 도중에 갑자기 껄껄 웃더니 다음과 같이 질문했다. "조지프, 자네는 아직도 자네가 죽은 후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길 바라는지에 대해 말하고 다니는가?" 슘페터는 큰소리로 웃음을 터트렸고, 옆에 있던 나까지도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슘페터는 30세 무렵에 그의 위대한 경제학 저술들 가운데 최초의 두 권을 출판했는데, 그 당시 누군가가 "당신은 진정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바랍니까?"라고 질문을 하자 "유럽 미녀들의 최고 연인, 유럽의 최고 승마인, 그 다음으로는 세계 최고 경제학자로 기억되기 바란다."라고 대답하여 악명이 높았기 때문이다. 슘페터는 부친의 질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그렇네. 그 질문은 여전히 나에게 중요하네. 그러나 지금 나는 그 당시와는 전혀 다른 대답을 하고 있네. 나는 대여섯 명의 우수한 학생을 일류 경제학자로 키운 교사로서 기억되길 바란다네. 아돌프, 이제 나도 책이나 이론으로 기억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알 만한 나이가 되었어. 진정 사람의 삶을 변화시킬 수 없는 책이나 이론이라면 아무런 소용도 없다는 걸 알았단 말일세." 부친이 슘페터를 만나러 간 것은 그가 병중이었고 오래 살지 못할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애석하게도 슘페터는 우리의 방문을 받은 닷새 후에 세상을 떠났다. 

 나는 그때의 대화를 잊을 수가 없다. 그 대화에서 배운 것은 세 가지이다. 첫째, 우리는 자신이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바라는지에 대해 스스로 질문해야 한다. 둘째, 우리는 늙어가면서 그 대답을 바꾸어야만 한다. 그것은 차츰 성숙해 가면서 그리고 세상의 변화에 맞추어 바뀌어야만 한다. 마지막으로 꼭 기억될만한 가치가 있는 것 한 가지는, 사는 동안 다른 사람의 삶에 변화를 일으킬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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